죽음으로 지속되는 생명,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생명의 본질 by 이터니아



나는 내 블로그에 방문해서 덧글 남겨 주신 분들의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에게는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트랙백을 건 저 글도 방문객분들의 블로그들을 돌아다녀보다가 
발견 한 것이다.

좀 오래 된 듯한 글이지만, 이 글과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맞물려지기에 다시 긁어오게 되었다.



#1
생명이란 흥미롭다. 생명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깃들어 있고,
모름지기 생명을 가진 것은 생명을 가진 무언가를 죽여 그 사체를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이끼나 광합성이 가능한 일부 박테리아와 식물은 그 어떤
생명도 취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심지어는 식물이라고 해도 '어느정도'는 다른 생명체의 죽음에 
의지하게 된다.

즉 죽음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 해 볼까?



식물은 '양분' 을 필요로 한다. 이 '양분' 은 어디서 오는가? 
대부분의 양분은 땅에서 오지만 지구가 가진 양분이라는 것은
유한한 양이 끝없이 순환하게 되어 있다. 

식물이 필요한 질소를 땅에 재공급하는 것은 죽어간 생물들의 
사체다. 죽은 사체가 박테리아에 의해 썩으면서 질소를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준다.

분(대변)이 비료가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동물이 무언가를
죽여 섭취하고, 그 섭취한 사체에서 소화하지 못한 부분을
내보낸 것이 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분도 사체에서 온다.

식충이나 육식식물이 아닌 이상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죽이지는 않지만 
결국 죽음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시켜 나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광합성 기능을 가지지 못한 생명체는 거의 모든 필요영양소를
다른 생명체에서 얻을 수 밖에 없다. 이에 예외는 없다.

초식성 동물은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위치한 식물을 먹고, 육식성 
동물은 그 초식성 동물을 먹는다. 어떤 육식성 동물은 다른 육식성
동물을 먹기도 한다. 잡식성 동물은 식물과 동물, 둘을 모두 먹는다.

그리고 그 어떤 동물도 죽으면 썩어서(분해되어) 또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시간의 처음에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우리가 아는 바로는,
유는 절대로 무로 돌아갈 수 없으며, 무는 유를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보존 / 질량 보존)

이런 법칙이 있으므로 지구가 가진 유기물의 양이 유한한 이상 
유기물은 순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언젠가 지구에는 
더 이상 생명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물체는 더 작은 단위로 분해될 수는 있지만 결코 소멸하지는 않는다.

몸을 이루는 분자 하나하나가 세상으로 돌아가, 그 일부는 또다른
생명체에게 흡수되어 그들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하나의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또 하나의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또한 하나의 생명체가 수명이 다하여 죽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순리다.

죽음을 통해 유기물이 순환되지 않는다면 생명은 지속될 수 없다.

초,중학생이라도 아는 '먹이 사슬' 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인간은 동물이다.
동물 중에서도 잡식성 동물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주로 동물을 섭취했다고 생각된다.
이는 인간은 식물 세포의 세포벽을 이루는 셀룰로즈(Cellulose)를 
소화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소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소장 
내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의 역할이다. 

즉 이 박테리아가 소장 내에 기생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식물을
먹어도 소화시킬 수 없으므로 식물을 섭취 할 이유가 없다.

어찌되었든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간은 씨앗을 땅에 심어
재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 수렵/채집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게 된다. 

그 이후로는 누구라도 아는 역사.



#2
이렇게 길게 써가면서 내가 하려고자 하는 말은 뭘까?

바로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소모하여 지속된다 라는 것이다.

인간 역시 생명을 끊임없이 죽이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은 이것을 부끄러워 해선 안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생명을 가진 무언가를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죽여 섭취해야 하지만 그런 후에 우리의 육신은 사후에는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새로운 생명의 양분이 된다.

이것은 다른 어떤 생명체라도 같다. 
생명이 죽음을 통해 지속되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다.

초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잊지는 말자
우리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살기위해서는 무언가를 죽인다는 사실을.


동물을 죽여 그 살을 취하는 것은 나쁘지만, 식물을 죽여 섭취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주장은 극히 잘못 된 것이다. 이는 식물이 살아있지
않다는 듯한 동물위주의 편파적인 생명에 대한 관점이다.

식물들은 동물들처럼 빛에 반응하며, 주변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엄연한 생명이다. 그들을 섭취하는 것과 동물을 섭취하는 것은
생명을 취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육식을 하든, 채식을 하든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양쪽 다 먹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잊지는 마라, 당신도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는 살아있는 것들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간으로써의 바람직한 마음자세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도
무언가를 죽인다는 절대불변의 순리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순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다른 살아있는 것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자세이다.



이번에 이오공감에 또 채식주의가 이슈가 되었길래 예전에 썼던 글을 파헤쳐 봅니다.
이 글 만큼 제 생각을 잘 정리한 글이 없거든요.

덧글

  • 카큔 2010/10/15 13:56 #

    생노병사, 먹고 먹히고 죽고 죽이며 순환하는 것은 생물의 근본이죠.

    누구도 생명이라면 여기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봅니다.
  • 미소라면。 2010/10/22 12:32 #

    공기만 마실 수는 없기 때문에... ㄱ-
  • 모범H 2011/02/08 09:07 #

    식물이 고통이 없다는 얘기는 보통 신경계통과 뇌가 없고 회피행동이 없다는 논거를 드는데요
    이는 지극히 동물 중심적인 얘기일 뿐입니다.
    관련돼서 다른 분이 적은 글이 공감돼서 일부 가져왔습니다.

    -------------------------------
    식물도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종류의 식물은 다른 식물들을 죽이기 위해 특정 화학물질을 분비하기도 한다고 그럽니다. 화학물질까지 갈 필요도 없이 서로 웃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다른 경쟁자들을 죽이려고 노력하는 것을 봐라. 어떤 종류의 식물들은 포식자가 뜯어먹으면 어떤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자기를 방어하기조차 한다고 합니다. 단적인 예로 양귀비는 신경계에 작용하는 모르핀을 분비하는데 정작 자기는 신경계가 없단 말이에요. 그러면 왜 이런 물질을 만드느냐. 그거야 포식자를 죽이기 위한 거죠. 포식자가 먹고 헤롱헤롱하다가 다른 넘한테 잡혀먹히든지 어디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든지 등등.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기한테 쓸모도 없는 유사에스트로겐을 만드는 것도 다 포식자들을 고자로 만들어서 대를 끊어놓으려는 수작인 것입니다.

    물론 식물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류의 감정은 없는 것이 틀림없는데 그렇다면 식물이 갖는 "먹히고 싶지 않다" 라는 기분이나 "나를 먹는 넘은 대를 끊어놓겠다." 라는 강력한 결의는 무어라고 정의를 해야 할 것인가? 포식자가 뜯어먹으면 식물이 보이는 일련의 반응들은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뜯어먹혀서 기뻐요~" 이런 느낌도 아닐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것은 무엇이라 정의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식물에게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 고통을 느끼느냐 안느끼느냐 하는 것은 고통이란 게 무엇이냐 를 정의하기에 따라 간단하게 답이 나오기도 하고 답이 나오지 않기도 하고 그런 것입니다. 사실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방법에는 '회피반응' 이란 게 사용된다고 하는데 (싫어하면 피하고 좋아하면 피하지 않고 이런 개념) 식물에게 회피반응을 기대하기는 쪼금 어렵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식물도 생물이고, "먹히고 싶지 않아 한다." 라 는 것. "먹히고 싶지 않아 한다." 라고 쓰면 마치 식물이 어떤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여 어폐가 있긴 하지만.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의 경우 애들이 놀리고 때리고 해도 히히 거리고 있으니까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다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식물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은 못느낄 지 모르지만, 만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별로 기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요.

    과학이 무진장 발달해서 식물과 대화가 가능해진 시절이 되어 식물들에게 물어봤더니 "아, 별로 아프진 않아요. 게다가 먹힐 때는 무척 기뻐요~ 꺄아~♡" 이런 대답을 듣는 날이 온다면 좀 다른 이야기지만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만일 식물은 고통종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입증된다고 해도 이것이 동물은 고통을 느끼니까 먹으면 안되고 식물은 못느끼니까 먹어도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출처: http://ask.nate.com/qna/view.html?n=8596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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