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태석 신부님 께서 이 세상에 남기고 가신 마지막 재산.
서재가방, 의료가방, 세면도구, 사진한장, 팬플룻, 액자, 성경, 아이들 장난감…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한센인)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중
2000년 4월 27일 종신서원을 하고, 2000년 6월 28일 로마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24일 서울 구로3동 천주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를 향해
선교사로 출발하여 12월 7일 아프리카 남부 수단 와랍 주 톤즈에 부임한다.
그곳에서 가난과 기아,질병 등으로 도탄에 빠진 마을의 참상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겸한
의료봉사활동과 구호운동에 헌신한다. 병실 12개짜리 병원을 짓고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인근 80여개 마을의 순회진료와 예방접종도 했다.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교 11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그러나 2008년 11월 한국에 휴가차 잠시 입국하였을 때, 대장암 4기를 진단받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암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새벽 5시 35분에
살레시오회 형제들과 가족들 그리고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 유해는 전남 담양 천주교 공동묘역
살레시오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나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이렇게 진정으로 사랑과 헌신을 몸소 실천하는 진정한
종교인들의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천번의 기회가 주어져도 절대로 하지 못할 일이니까.
정말 매번 느끼는건데, 교회는 싫지만 성당은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덧글
물론, 대다수는 먹싸..
슬픈 일입니다.
이렇게 다시 보니 새삼 또 마음이 아파오네요.
이분을 저기저 개독들이 본받아야 할텐데
우리나라의 위대한 종교인들은 돌아가시기만하고
개독들은 늘뿐입니다 ㅠ
나쁜놈들이 나쁜겁니다 ㅠㅠ
하지만 좋은 목사분들도 계실거라고 믿슙니다.
같은 성직자라고 하면 빤스내리라거나 수천억짜리 건물에서 땅떵거리며 자식들 유학까지 척척보내는 목사들보다는 심적으로 너무 공감됩니다.